그때그시절

[스크랩] 수원 화성(華城). 옛 사진

광화문짬뽕 2011. 2. 22. 09:51

 

 

수원 화성, 팔달문 화성(華城) 

 

<엽서>수원 화성 팔달문 화성(華城)은 정조(正祖) 20년(1796)에 완성된 성으로

정조 임금의 효심과 개혁의 뜻이 담긴 성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은 무엇보다도 축성의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남아있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팔달문(八達門) 앞 상점의 모습과 2층 누각의 뜯겨진 벽이 보인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과 용연(龍淵) 동북각루(東北角樓)인 방화수류정과

그 아래 연못 위에 솟아오른 바위는 광교산의 일맥이 용 머리가 되어 솟은 것이라고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서는 말하고 있다.

 

한국 정자를 대표할 만큼 아름다운 이 각루는 평면구조가 아닌 다각화된 형상으로

사계절 변화의 미가 지금도 독특하다.

 

 

 

화홍문(華弘門) 광교산에서 흐르는 개천이 성내를 관통하는 곳에

북수문과 남수문을 설치하였다.

 

북수문은 풍광이 아름다운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아래에 일곱 개의

아치형 석조 수문을 쌓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누각을 세웠다.

이것이 화홍문으로 방화수류정과 함께 화성(華城)내에서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성벽은 장안문(長安門)과 연결되어 있다.

 

 

 

수원지지대(遲遲臺) 정조(正祖)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잠들어 있는

현륭원(顯隆園)을 바라보며 더딘 발길을 재촉하던 이 긴 고개가 지지대 고개이다.

 

고개 마루에는 정조의 효심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순조7년(1807)에 호조판서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師國)이 쓴 비석을 세웠는데

이것이 비각 안에 있는 지지대비(遲遲臺碑)이다.

 

 

 

수원신사(水原神社) 일제 식민지 치하 조선 말살 정책의 하나로

일본 황실과 그 공로자들 추모하는 곳으로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천도교 월보 1910년 8월 15일부터 1937년 5월까지 발행했던 천도교의 월간 기관지이다.

 창간호부터 한글로 글을 싣고 있는 이 월보는 민중을 계몽하고 교양을

보급하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천도교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경성지방법원수원지청 일제 식민지 치하 조선인을 탄압하기 위해 설치한 재판소이다.

 

  

화성 창룡문(華城蒼龍門) 현재는 다시 복원되었지만 이 엽서 사진은

 6.25 동란 중 소실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얕은 언덕에 옹성을 두르고 연무대(鍊武臺)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성문으로

장안문이나 팔달문에 비해 규모가 작다.

 

 

화성 화서문(華城華西門) 사진처럼 예전에는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가파른 팔달산으로 오르는 성벽과 연결되어 있는 서쪽문이다.

 

 한가로이 소가 풀을 뜯는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사람들은

직접 성문 안으로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주변이 도시화되어 그 면모를 잃었다.

그 규모는 창룡문과 비슷하다.

 

 

 

 화성 연무대(華城鍊武臺)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성내를 조망할 수 있는 등성이에 건물과 조련장을 마련하였다.

앞에는 창룡문 옆으로는 동북공신돈과 연결되어 있다.

  

 

수원역 1930년대 조선 풍물 안내첩에서 수원역을 소개하는 사진이다.

전통 관청 건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오늘날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수원역사 건축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과 더불어

이러한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한다.

 

 

 

 

출처 : 방갈초등학교 총동문회
글쓴이 : 김일환 (15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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